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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잊기 위해 달렸다_실연런 시즌1

동글머니 2025. 2. 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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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내 달리기에도 처음은 있었다.

 

갓 100일을 넘긴 애인과 카카오톡으로 허무하게 이별을 했을 때였다.

온통 밖으로 퍼다준 내 정념을 다른 곳에 쏟아 부어야만 했다.

 

이별 후에 지난 연인을 잊기 위해 뭘 해보았냐?

한참 지난 지금 떠올려 봐도 15가지가 넘는 방법을 통해

이별을 극복해보려고 했다.

 

이별 당일 세 끼 꼬박 굶고, 우느라 빠져나간 눈물 깡생수로 보충

친구 붙잡고 전화 통으로 하소연 한 사발

이별 다음 날 고량주 한 병 야외에서 퍼마시고, 공원 화초에 토악질하고, 비틀거리며 집까지 귀환

술 깨기 전까지 잠에 들기가 싫어서 유튜브로 새벽 3시까지 노래 선곡해가며 들음

모임에 나가서 헤어진 사실을 밝히고, 다른 사람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서 이별을 잊으려고 함

매일같이 나를 달래는 글, 그를 그리워 하는 글, 반성과 회고의 글, 보내지 못할 편지 많이 씀

 

미친 척 집 앞에 찾아가서 기다리는 상상도 수십번을 한 거 같지만,

이상하게 상상 속에서조차 나는 문 앞에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허탈하게 돌아올 발걸음만 못내 생생해서 단 한 번도 찾아가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건 스토킹이지 (...)

 

그리고 또 생애 최초로 홀로 떠나는 국내 여행 - 그것도 비행기 탐 - 을 시도해봄

그 와중에 바에서 혼술하기 로망은 좌초 됨

<이별 감정 사용 설명서> 라는 책을 서점에서 구매하고 3회독 넘게 함

온갖 재회 유튜브 영상은 다 보고, 재회 업체 글도 다 보고, DC 이별갤러리 중독이 됨

 

유기견 보호소에 다니며 버림받은 강아지들의 눈망울에 눈시울 붉히고 코 끝 찡해짐

당연히 소개팅 나가서 잊으려고도 해보았으나 직전 연인과 닮은 모습에 허탈할 뿐이었음

사실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던 거 같다 자꾸 비교가 되니까.

 

단체 GX 프로그램 등록해서 운동도 해봄. 

그 놈이 헤어질 때 "덕분에 행복했고, 건강하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건강에 대한 강박이 생길 것도 같았음.

'미친놈아, 행복한데 왜 헤어지자는 거야?', '뭐가 그렇게 행복했는데?'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알량한 자존심에 이 꽉 물고 그냥 버팀. 호기심 천국인 내겐 형벌이었다.

 

원한 맺힌 귀신처럼 시간을 보내며,

친구에게 어려운 심정을 토로하다가 친구가 권해준 게 삶을 옳게 살려면 "감사"와 "운동" 두 가지면 된다고 했다.

감사일기는 지긋지긋하도록 타성에 젖어서 쓴 경험이 있어서 일단 패스하고.

운동을 하기 위해 알려준 것이 바로 '런데이'였다

 

"어플 깔면, 30분 달리기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거 해봐"

"하다가 익숙해지면 나중에 나이트 런 같이 뛰자!"

 

그리하여 나는 벚꽃 정도는 다 질 무렵에 달리기 시작했다.

 

 

초보는 하루 뛰고, 하루 쉬라길래 정직하게 간격 지켜가면서 뛰었다.

지금은 매일 들어가서 보는 러닝갤....

그때는 종종 눈팅하면서 '하뛰하쉬'라는 용어도 득템했다.

 

5월은 러닝 입문하기에 좋은 달이었던 거 같다.

허름한 요가 반팔티, 등산 바지, 집에서 구르던 운동화를 누덕 누덕 걸치면 그걸로도 충분했다.

 

작년 5월의 나는 한 달에 고작 23km을 걷고, 뛰는 몸이었다니. 지금 보니 놀랍긴 하네.

 

뛰는 동안에는 런데이 아죠씨가 뛰는 동안 알쓸신잡 같은 러닝 상식을 귀에 강제로 주입해줬다.

좋은 신발 고르는 법, 러닝할 때 패션템이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

어떤 점원에게 신발을 추천받을지, 달리기에 좋은 자세와 같은 정보들.

 

난 내가 계속 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뭐 뛰는데 신발 씩이나 필요하고, 옷을 갖춰 입을 일이야?'라고 생각했다.

 

연애 중일 때는 카톡이며 전화며 하느라 흘러갔던 시간

이별 후에는 다시 걸려오지 않을 전화를 혼자 기다리며 분노했던 시간

그런 저녁의 설레고 두근거리고,

아프고 저몄던 시간들이 달리기로 채워졌다.

 

퇴근만 하면 집 앞 공원에 가서 뛸 생각 뿐이었다

 

하루 하루 못 견딜만한 시간들을 채워넣는 콘텐츠였다.

동시에 평생 외면하고 살아온, 정신을 담는 몸에 대한 응시를 처음 해보았다.

내 몸으로 들어오는 호흡, 가쁘게 내뱉어야만 하는 숨

어쨌거나 정직하게 내 몸 만큼의 무게를 이고 지고 뛰어야 하는 시간들

이른 아침에 맺힌 이슬과 서리, 늦저녁에 살짝 부슬거리면서 흩뿌리는 빗방울

턱과 등줄기를 따라서 흐르는 땀방울

 

온몸에 수분이 빠져나가면,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영화 <중경삼림>속 경찰 223의

중2병 같은 소리를 내가 이 나이에 달리면서 공감하고 있을 줄이야! 

처음에는 달에 진 달무리만 보고도 생각이 구름끼듯 뿌옇게 끼었는데.

 

뛰다보면 마침내 모든 잡생각이 깔끔하게 지워져서

땀투성이가 된 내 몸만 남는 기분도 좋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고, 6월에는 주말에도 꼬박 꼬박뛰었었네.

그리고 월 마일리지가 51km로 늘었다.

여전히 걷고 뛰기를 인터벌로 하던 시기였다. 

 

런데이 아저씨가 자꾸 '누구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강해지고 있다'고 까스라이팅(?)을 시전해서.

 

그의 부담스럽도록 과격한 치어리딩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나는 노예 마냥 하뛰하쉬를 지키며 뛰었다.

 

그리고 7월이 되었고, 나는 7월 동안은 단 3번을 달렸다.

더워서? 아니다.

 

나는 지난 2년 반 동안, 삼복 더위에도 임장을 다녔고,

때론 냉방이 잘 되지 않는 집에 살기도 했으며,

한여름엔 국토 대장정도 2번이나 다녀온 적도 있다.

 

요는, 난

추위보다는 더위 속에서 움직이는 편을 더 선호했다.

 

그런데 나는 왜 7월에 3번만 뛰었냐고?

 

다음편에 계속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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