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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명상, 글쓰기

중경삼림(重慶森林 , Chungking Express), 야너두 실연당했냐

by 동글머니 2023.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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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화 중경삼림을 4번째로 관람했다

볼 때 마다 분위기와 음악, 90년대 홍콩 분위기 너무 좋았다

아니 사실 처음 볼 땐 그 분위기도 못 받아들였던 거 같다

 

다만 몇 번을 봐도 영화의 서사 뼈대가 되는 노답 실연 감성에 의문을 가졌는데,

막상 장기 연애 끝에 실연하고 보니 이렇게 재미난 영화가 또 없다

중경삼림, 이렇게 개꿀잼이었어?

 

1.

감히 내가 두 미남 금성무도 차고, 양조위도 차고 나서,

그들의 망가져버린 일상을 구경하는 재미랄까?

왕가위 감독님, 이거 맛집이네요!

경찰 제복 입은 댕댕 연하남들이 미련 철철,

제 정신들을 못차리고 있다고요!

 

그런 그들의 망가진 일상의 구원이 되어주는

임청하와 왕페이에 이입도 해보고.

축축한 실연의 늪에서 어떻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힌트가 왕왕 보이는,

흐린 뒤 맑은 California를 꿈꾸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2.

시리즈온에 올라온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판으로,

내 방 빔프로젝터를 이용해서 감상 :)

 

3.

이번 관람에선 금성무 편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이별에 한껏 지질해진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했기 때문이지

야너두 이별했냐? 나도 했다!

 

금성무는 4월 1일 만우절에 메이에게 이별을 통보 받는다

입덕 부정이 있듯, 이별 부정을 하는 금성무는 

메이가 한 달 동안 유효한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보호한다

 

이별 앞에선 누구나 방어적이 되기 마련이다

나도 헤어진 지 5개월 지나고도 아직 '헤어졌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 알리진 못했다

 

 

메이의 이별통보가 거짓이길 바라며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샀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의 5월 1일을 하루 앞둔 날에도 통조림을 샀다

사진은 2023년 4월 30일 일요일에

1994년 4월 30일 일요일을 배경으로 한

<중경삼림>을 보고 있단 걸 남기고 싶어서 찍음 >_<

진짜 기가 멕힌 영화 선정 아닌지ㅎㅎ

이럴 땐 영화가 반려취미가 되어줘서 참 고맙다

그리고 5월 1일 아침에

경찰 223(금성무)는 깨닫게 된다

 

메이에게 자기가 통조림 같은 사람이었단 걸,

그 관계의 유통기한이 다했다는 걸 드디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간 사모은 30개의 통조림을 다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개는 참 좋은 인간의 친구지만, 말 할 수 없음을 슬퍼하며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조리 먹어 치운다 (...)

 

그렇게 당분에 절여진 경찰 223은

불현듯 결심을 하게 된다(!)

 

"바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겠어"

고독에 절여진 금성무 눈에 바에 앉아있는 썬글라스를 낀 금발머리 여인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사족: 이건 4월 11일에 타로카드 뽑다가 Lovers와 cup2카드 뽑고 지역 주민 모임에 부랴부랴 뛰쳐나간 내 모습 같아서 헛웃음이 비실 비실 났을 뿐이다. 연애운에선 거의 최성타로 친다는 러버스와 컵2 카드라니! 이 모임에서 새 애인을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이 정신머리 없는 미남은 썬글라스를 끼고 있는 이유에 대해 3가지 추측을 하며,

임청하를 실연녀로 재단해버린다

실은 그녀는 언제 비가 올지, 언제 해가 뜰지 몰라 레인코트와 썬글라스를 동시에 착용했을뿐인데도.

 

남자친구 코스프레를 하며 기꺼이 어깨를 빌려줄 기세다

잔뜩 술에 취한 둘은 호텔 체크인까지 가게 되는데 (두둥!)

 

술에 잔뜩 꼴아버린 금발머리는 정말로 '쉬다'가고 싶었던 것이 밝혀진다

금성무는 혼자 밤 새 영화 2편을 달아서 보고, 임청하의 힐을 벗겨주고 그 방을 나선다

 

뿌옇게 새벽이 밝아올 무렵, 경찰 223은

운동장을 뛰기 전에 삐삐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삐삐를 버리기 전에 확인해보니 음성메시지가 한 통 와있다

 

"생일 축하해"

 

그렇게 사반세기를 살아버린 스물 다섯살이 된,

심장이 아직도 뛸 준비가 된 댕댕남

생일 축하메시지에 마침내 구원받았도다

 

"기억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

 

영원한 사랑을 꿈 꿀 심장이

다시 준비되는 순간이 있을까?

 

"조깅을 하면 몸 속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그러면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

 

사랑의 유통 기한이란게 있다. 그건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약속된 시간이란 뜻일 거고.

우리 사이에 이 생에 허락된 시간이 다 흘러버린 건 너무 애석하고 슬픈 일이지만.

그래서 나도 빈 방에 잠겨 꽤 자주 울었지만.

어제도 난 네가 손수 써준 편지를 꺼내어보다 구태여 울었지만.

 

수분이 다 빠져나갈 날 오겠지!

 

4.

왕페이, 양조위 파트는 예전 관람 때에도

서사를 충분히 따라가면서 봤기 때문에

아주 새로운 발견은 없었다

 

다만 야윈 비누와 통통한 비누에게 말 거는 양조위를 보며,

비누 1개를 나혼자 온전히 쓰는 데엔 3개월이 걸린단 걸 알아낸,

독립을 성취해낸 스스로가 새삼 대견했다

 

하나 더 있구나!!

상공 22000피트에서 경찰663(양조위) 외모면 스튜어디스를 꼬실 수 있고,

제복 취향은 잘 변하지 않으며(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엉 울고 있는 방 전체에 햇살처럼 찾아와준 캘리포니아 걸 왕페이라면,

제복 없이도 다시 사랑을 꿈꿀 수 있다는 것!

 

물론 캘리 걸 왕페이가 다시 제복을 입고 꿈결처럼

1년 만에 다시 양조위 앞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 반복강박같은, 꿈결같은, 사랑이여

 

https://youtu.be/w4icg9p6SxY

 

방 안의 수건이 울고,

방 안 어항에 기대어 인형과 대화를 해보고,

창 밖에도 비가 내리고, 방의 수도꼭지가 터지고,

이런 습한 날들이 지나면 다시 건조하고, 쨍쨍하게,

빨갛고, 노랗게 뛰는 내 심장이 살아돌아오겠지

 

5월 1일 아침,

영화가 내게 준 깨달음은 그래서 뭐냐면 (...)

 

'우리'의 유통기한이 다 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동안 '우리'가 나눈 시간과 공간, 감정과 글귀, 물건과 추억들을 모두 인정한다

그 이미지를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겠지만, 잊으려 애쓰지도 말자

떠오르면 떠오르는대로, 이제는 그 자리가 비어있음을 알아차리자

너의 존재의 부피, 네가 건내준 삶의 위안에 모두 감사하자

너는 내게 사랑이었다

내 사랑의 패턴이었지만, 더는 내 삶의 패턴이 될 수 없었어

사랑했어

고마웠어

 

다시 빛나기 위해 그저 내게 주어진 이 귀한 시간을 즐겨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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