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의 로망 빔.프.로.젝.터
드디어 샀다! 월-E 같이 생겼구만 ㅎ
빔프로젝터가 들어옵니다
빔빔빔빔!
삠삠삠삠삠삠삠삠
힘차게 빔 선수 입장합니다!
굉장히 오랫동안 흰 벽이
비어있는 곳에 산 적이 없었다
늘상 행거나 책꽂이, 책상 등 가구에 점유당해서
흰 벽의 여백을 늘 채우며 살아왔다
이제 흰 벽을 그대로 여백으로 내버려둘 수 있는
나만의 방이 생긴고로,
영화적 체험을 하게 해주는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잠깐 감상해본다
백석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벽에 과거의 기억과 사랑 미래에 대한 다짐과 슬픔이 영사되는
외롭고 쓸쓸한 시다
이제 독립을 선언한 나도 빔프로젝터가 있으면
백석의 감수성을 뿜을 수 있을것인가? ㄷㄷㄷㄷ
그럴 리는 없고, 그냥 오래된 로망을 간직한 스스로를 위해 보상심리로 샀다
쿠팡에서 파는 Top10 빔프로젝터 중 적당한 걸 골라서 샀다
(안물안궁 제품 팁: 해당 상품은 포토리뷰를 쓰면 5000원 삼각대도 주는 것이었다
삼각대가 있는 편이 더 넓은 영사 화면, 각도 조절 면에서 편리하다)
빔프로젝터 이용기
[제 1 막]
목 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너무너무 땡겨서 고민할 새도 없이 1번 테스트 영상으로
틀어버린 것은? 두그두그
바로 울 S.E.S. 언니들의 Just a feeling이었다 후후후
빔프로젝터를 방에 들인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의 삘-링!!!!!!!!!
젓써삘링!!! 느낀 그대로 말해!!!
독립의 쾌감이 영사기의 빛을 타고
10대시절부터 쭉 좋아했던 아티스트의 노래 리듬을 타고
어둠내린 흰 벽에 일렁일렁거렸다
다음곡으론 Choose my life를 들었다
May be I don't have to be afraid again
I have me & that is all I need Choose
keep on dreaming
또 하루를 시작하는 나를 위한 작은 선택은
바로 나 내가 필요한 것은 소중한 내 자신인걸
내 앞에 펼쳐진 하루를
나만의 색으로 칠할게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
세상은 그런 나를 기다려
나를 위해 준비된 이 멋진 무대에
hey! come on my baby
I don't have to be afraid again
I have me & that is all I need
Choose my life & keep on dreaming
또 하루를 시작하는 나를 위한 작은 선택은
바로 나 내가 필요한 것은 소중한 내 자신인걸
넌 나를 보고 말하지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고
세상은 그런 거라고
나는 네게 말했지
운명은 없는 거라고 내가 만든다고
내 안에 숨겨둔 사랑을
오늘밤 너에게 전할게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
사랑도 이젠 내가 선택해
나를 위해 준비된 이 멋진 세상에
살짝 노골적일 정도로
내 삶의 주인공은 나!
나를 위한 선택은 나!
를 외치는 귀여운 곡이다
기왕 독립을 멋지게 선택한 나에게
직설적인 곡으로 축하도 멋지게 한 번 했다
[제2막]
독립한 나를 위한 영화제(?)를 열어주기로 했다
상영작 선정은 역시나 즉흥적이었는데,
왓챠에 '보고싶어요' 등록해둔 영화 목록을 뒤적여보다가 몇 편 뽑았다
그리고 버스터 키튼의 <일곱번의 기회>
에른스트 루비치의 <천국은 기다려준다>
빌리와일더의 <하오의 연정>
롭 라이너의 <스탠 바이 미> 영화를 며칠 달아서 감상했다
버스터 키튼의 무성 흑백 슬랩스틱 영화
<일곱번의 기회>는 내방구석 1열 독립 영화제 1회차 상영작으로
넘 즐거운 선택이었다
영사기가 쏘는 빛과,
내 방 벽과, 그 벽에 비친 배우들과,
오롯이 나만이 존재하는 호젓한 시간이었다
결혼을 위해 질주하는 수백명의 신부들의
레전드 짤이 등장하는 영화
슬랩스틱의 가동 범위(?)가 종횡은 물론, 수직적으로도, 원경~근경으로도,
온 방위적으로 코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여서 사뭇 감상이 즐거웠다
<천국은 기다려준다>는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영상이
크라이테리언에서 가지고 온 것인지 색감이 참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고색창연한 이야기에 연출이 깃든 맛을 보는 재미가 좋았다
꽤나 많은 영화들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 이를 떠올려보는 것도 재밌었고
<하오의 연정>은 빌리 와일더의 영화치곤 다소 실망스러운 면도 많았지만
오드리 햅번의 연기나 느슨한듯 작위적인 플롯을 간만에 보는 기분도 색달랐다
그리고 대망의 <스탠 바이 미>는
독립한 나를 위해 준비한 (?) 특특별 독립 영화였다
<허공에의 질주>를 한 번 더 볼까하다가, <스탠 바이 미>를 보았다
리버 피닉스는 유년기에도 참 존재감있는 마스크였구나 (...)
어른들에게, 세상에게 상처받고 소외된 소년들
기찻길 따라 가면 온 세상이 다 아는 실종된 소년의 사체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소년들은 사체를 보겠다는 열망에 휩싸여 길을 떠나게 된다
소년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로드 무비 겸 성장 무비인데,
원작이 스티븐 킹의 소설이었다는 점이 놀랍고, 이를 따스한 풍경으로 빚어냈다는 점도 놀라움 -,-
영화 엔딩 크레딧에 Stand by me 노래가 나오는데,
러브 앤 몬스터스를 보았던 기억도 덧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너무나 외로운 노래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제3막]
3막은 친구들을 불러서 집들이를 하던 날이었다
카타르 정국(..)을 몇 번 돌려서 보고,
BTS의 최신 타이틀곡부터 데뷔 타이틀곡까지,
무대영상을 역주행할 수 있게 모아둔 유튜브를 함께 보았다
본 적이 없는 무대 영상이 많이 나와서,
홀린듯 3명이 함께 BTS를 감상하였다 (...)
침대에 기대고, 앉고, 엎드리고
가장 편안한 자세에 가깝게,
함께 야금 야금
빔이 쏘는 빛을 홀린 듯 바라보며
무의미한 듯 강렬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들만 합쳐보더라도,
나의 독립,
1인분의 어둠과 빛,
성공적이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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